코로나의 여파로 사회적 거리 이후, 생활 속 거리 두기가 한창이다.

식당, 회사, 교회 등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들도 이젠 거부감 없이 익숙해져 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일부는 이러한 생활속 거리 두기가 거북한가 보다. 아직까지 회식이나 모임 등을 제약받다 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공동체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개인보단 조직과 집단을 우선시한다. 조직과 공동체에 융화되지 못하면 도태된 느낌으로 자괴감을 받기까지 한다. 혼밥, 혼술이 대세라고 하지만 아직도 혼자라는 단어를 낯설게 생각하고 누군가와 함께할 때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로 그럴 것이 사람은 모름지기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더더 욱 그럴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이가 먹을수록 더 강한 듯하다. 오래된 사회와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있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회사 사람 중에서는 업무로 식사 시간이 다소 늦어질 때면 동료들과 함께 식사 시간을 놓치게 되는데 식사를 먹지 않는다. 혼자 밥 먹기가 뻘쭘하단다.... 

 

나는 오히려 나이가 먹을수록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조직과 사회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 라는 존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또한 조직과 사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생각하는 기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대로 나이가 어릴수록 혼자보단 조직과 사회와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초년 시절에는 배우는 단계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배우고 경험하고 실패하고 성과도 얻어보고 해야 한다. 혼자 모든 것은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회사의 선후배 및 동료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꼭 그것이 일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생각과 경험을 배울 수도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사회적 행태는 젊은 사람들일수록 개인화, 혼자만에 대한 문화가 더욱 강해지고, 나이가 먹을수록 기존의 조직문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loneliness는 우리가 '외로움' 하면 흔히 떠올리는 '쓸쓸함'을 의미한다. 이 외로움은 아노미(anomie), 즉 가치관이 붕괴되고 목적의식이나 이상이 상실됨에 따라 나타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비롯된다. 그에 반해 solitude는 발전과 자숙을 위한 마음의 안정을 의미한다. 자신의 능동적 자세와 열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주목해야 할까? 바로 즐거운 외로움, solitude 다.

서울의대 정도언 명예교수는 <프로이트의 의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현명한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해 말합니다.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이고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덜어내야 좋은 감정이지만 고독은 추구해야 할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 발거 벗은 힘  [이재형]

 

우리 모두 언젠가 회사라는 울타리는 떠나야 한다. 영원할 것 같지만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때가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에 홀로 선 모습을 상상해 보라.

자신이 있는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가? 오늘 하루하루의 선택이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서 있는 나의 모습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지금의 평범한 일상을 절대 평범하게 흘려보내지 못할 것이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불안에 떨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스스로 믿고 의지할 날개가 있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명함이 아닌 당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있는가?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자신만의 날개로 비상할 자신이 있는가?

- 발가벗은 힘 [이재형]

 

"

지금부터 5년 후의 내 모습은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요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 찰스 존스

"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인생은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끊어가는 것이다. 머리를 삭발하고 계를 받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출가란 익숙한 한 세계를 떠나 전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이다. 한 나라의 왕자로서 남부러울 것 없던 싯다르타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출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익숙한 자신의 세계를 벗어던짐으로써 참된 자신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어가려 애쓰지 말고 단칼에 끊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나는 이 가르침을 하루하루 깊이 새기며 살아가고 노력한다.
눈 앞의 생계를 핑계로 인생의 참된 본질을 무한정 미루어 두고 살아가는 것만큼 커다란 비극도 없다. 

잠시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라.

지금부터 5년 후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때도 지금과 같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매달려 있다면 어떻겠는가?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겠는가?
5년 후에도 뻔한 삶을 살고 있다면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겠는가?

" 인생의 선택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머물고 있는 회사는 언젠가 떠나야 하는 곳이다. 아무리 회사를 사랑하고 넘치는 열정으로 헌신한다 하지라도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떠나야 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익숙하고 안정적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변화와 도전은 언제나 힘겹고 두려운 것이다. 좌절과 역경이 암초처럼 곳곳에 널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대로 만족하며 살 것인지, 한걸음 나아가 울타리를 벗어난 새로운 세상을 살 것인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항구는 안전하다.

바다의 한  지점에 떠 있는 배와 항구에 정박 중인 배를 비교하면, 당연히 항구에 닻을 내린 배가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언젠가 떠나야 한다. 풍랑이 잦아들면 하시라도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길어 올려야 한다.

인생도 이와 같다.
항구에 묶여 있는 배에게 수확을 기대할 수 없듯이, 현재의 생활에 안주하는 인생은 일정 수준 이상의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기대할 수 없는 생각은 늘 공상이 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항구를 떠나야 한다.

- 내 인생 5년 후 [하우석]
사람들은 돈을 시간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은 돈으로 결코 사들일 수 없다

- 탈무드 중에서

오늘 하루도 바쁘게 지나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또 남은 하루는 좀 더 남은 삶을 위해 자기 계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바삐 지나간다. 나이가 들고 할 일이 더 늘어남에 따라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쉬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 오늘의 안식을 내일로 미루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절대 다음으로 미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이것 만큼은 포기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부모를 의지하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성장하여 또래의 친구를 찾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부모와의 시간은 줄어든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독립의 의지를 갖기 시작한다. 그러면 더욱더 부모에 대한 애정 표현도 소극적으로 변하고 부모와의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십 대 초반일 듯하다. 어린 새싹이 물과 햇살을 주는 만큼 크듯이,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과 애정 표현이 아이의 인성과 성장을 좌우한다. 사랑을 주는 그 이상으로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시기이다. 아이에겐 소중하고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니,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이 소중한 시기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일과 가정에 대한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그러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있겠는가.

나 역시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물러서거나 포기해서는 안되기에 오늘도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마음속으로 되뇐다.

 

" 나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은 나중에 돈으로도 살 수 없다. "

주말이라 아이들과 놀이터로 놀려고 나가는 길에 막내가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질문을 했다.

 

“아빠 꿈은 뭐야”

“어? 글쎄…..”

 

갑자기 물어온 대답에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지만 순간적으로 떠오른 대답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다음번에 아이들이 아빠 꿈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뭐라고 답해할지를.....

 

경제적 자유?

도시를 벗어난 삶?

좋아하는 산이나 실컷 다니는 여유로움?

지금 내가 목표(?)로 하는 것들은 이런 것이다.

어릴 때 직업 군인을 꿈꾸던 시절이 있긴 하다.

하지만, 20대 이후에는 꿈에 대한 생각은 솔직히 없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뿐이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학점과 장학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취업하게 되고… 그렇게 뚜렷한 목표는 없이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지금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아이들 잘 키우고, 경제적 자유 최대한 빨리 이루고 싶은 것인데…

이것도 꿈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때는 다양하다. 그리고, 대부분 사소한 일로부터 행복감을 느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즐기는 망중한(忙中閑), 짬을 내어 아이들과 놀아줄 때, 가족과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할 때 등 행복감을 느낄 때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을 위한 일들 모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간을 가져야 가능하다.

 

아무리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하더라도, 시간의 자유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외부 환경과도 타협하지 않고 물러설 수 없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 내 삶은 심플한가? 그리고 나는 시간을 지배하고 있는가?'

워라밸을 실현하며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직장인, 궁긍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직장인이 되기 위한 비결 중 하나가 이 질문에 있다.
삶이 복잡다단하고 시간에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면 워라밸은 무너지게 되고, 그런 경우에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 한두 시간 정도는 자신만의 시간을 사수하고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여유 있고 행복한 삶을 사는 느낌이 들게 된다.

여유 있고 심플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 밀도 있는 시간이다. 즉,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 시간과 일체감을 갖고,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돼야 하는 것이다.

- 발가벗은 힘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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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 둘과 술자리가 있었다.

술자리는 늘 그랬듯이 처음에 주제는 나름대로의 관심사로 시작하다가 결국은 회사 얘기로 접어들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 회사는 4월에 승격 시기이기 때문에 요 시기가 되면 더욱 민감하다. 승격 발표가 있기 전에는 나름의 기대에 대한 얘기로, 발표 후에는 회사에 대한 서운함에 대해 토로하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나 회사 얘기로 시작해서 회사 얘기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술자리나 밖에서 회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다른 얘기로 관심을 돌리려고 노력해도 회사와 상사에 대한 얘기를 안주삼아 술자리가 길어지게 된다.

 

두 동료는 누가 봐도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실력도 있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감으로 늦게까지 남아 문제를 해결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문제가 발생하면 출근해서 업무를 보기도 했었다. 항상 언제 퇴근할지 모르기 때문에, 회사에서 운영하는 출퇴근 버스를 두고 자신의 차로 출퇴근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번번히 진급에서 누락이 되었다. 거기에 대한 서운함, 아쉬움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항상 정시에 퇴근하면서 회사 출퇴근 버스를 타는 다른 부서원들을 부러워하는 한편 왜 우리 부서만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원망 섞인 얘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번에는 진급하겠지,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팀장이 챙겨 주겠지...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 몇 차례의 진급 시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두 동료가 회사를 너무 사랑하고 애사심이 넘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언젠가 찾아올 희망퇴직을 예감하고 있고, 회사는 자신을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느끼고 있는 편이다. 늘 회사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편이었다.

 

힘들어할 때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느냐. 적당히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항상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해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지, 회사에 집중할 때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과 업무에 상당히 지쳐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술자리도 결과 없는 뻔한 스토리로 마무리 하게 되었다. 직장인들 모두 동감할 것이다.

 

부디 올해는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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